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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지은 집 직접 확인 뒤 살 수 있지만 분양가 뛸 우려

후분양제 의무화 땐 어떻게 되나

건설업체가 제공하는 팸플릿이나 견본주택만 보고 짓지도 않은 아파트를 수억원씩 먼저 내고 사는 지난 40년 동안의 시장 관행(선분양제)이 막을 내릴까. 정부가 후분양제 입법을 추진하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후분양제 도입을 사실상 결정하면서 후분양제 도입이 탄력을 받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올 상반기 중 주거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후분양제 로드맵을 내놓을 방침이다. 공공 부문을 단계적으로 의무화하고 민간 사업자에는 인센티브를 제공해 후분양을 유도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후분양제는 장단점이 확연히 갈린다. 2~3년에 걸쳐 계약금과 중도금, 잔금을 치르는 선분양 방식과 달리 후분양을 하면 분양받는 시점과 입주 시점이 짧기 때문에 한꺼번에 목돈을 마련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후분양에 부담을 느낀 건설사가 착공에 나서지 않으면서 아파트 공급이 줄고 결국 집값이나 전·월세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후분양제로 분양가가 오를 수도 있다.

허윤경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후분양제가 도입되면 건설사가 그간 소비자로부터 조달해왔던 자금을 금융권에서 빌리는 등 자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자 비용이 분양가에 전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아파트 공급 물량 감소할 수도

반대로 상품도 안 보고 고가의 아파트를 구매하는 비정상적인 거래가 사라지고, 부실시공이 줄 수 있다는 목소리도 크다. 선분양 때는 아파트에 하자가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준공 직전이라면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아파트를 시공한 후에 정확한 공사비가 산출되기 때문에 분양가 역시 합리적으로 정해질 수 있다. 소비자와 건설사 간 정보 비대칭이 해소된다는 것이다.

실수요자뿐 아니라 시세 차익을 노린 투자자까지 분양시장에 뛰어들면서 분양권에 웃돈을 주고 거래하는 투기가 줄고, 아파트 공급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이라는 기대도 크다. 건설사 간에 품질 경쟁이 붙으면서 아파트의 질도 더 좋아질 수 있다.

서순탁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교수는 "선분양제가 건설사를 위한 제도라면 후분양제는 소비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제도"라고 말했다.
 
건설업계는 부담스러운 눈치다. 1977년 도입 이후 시장 관행으로 자리 잡은 선분양제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후분양제를 하면 자금력이 약하고 신용도가 낮은 중소 건설업체는 버티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대형 건설사가 시장을 과점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또한 아파트를 다 지었는데 분양이 되지 않을 경우 부도 리스크도 커질 수 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금융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대형사 위주로 주택시장이 재편되면서 건설사 간 양극화가 심해질 수 있다"며 "후분양제를 강제하기보다 건설사에 저리 대출 등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유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부와 일부 정치권이 후분양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40년째 시장 관행으로 자리 잡은 선분양제를 뒤집을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
 
후분양제는 2003년 노무현 정부 때도 도입이 추진됐다. 하지만 건설업계의 반발에 부닥쳐 무산되고 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일부 공공기관에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국회 문턱을 넘을지도 의문이다. 후분양제를 단계적으로 의무화하려면 주택법을 개정해야 한다.

현행 주택법은 선·후분양에 대한 규정이나 규제 없이 사업자가 자율적으로 분양 방식을 결정할 수 있게 돼 있다. 현재 국회에는 국민의당을 탈당한 정동영·윤영일 민주평화당 의원이 각각 발의한 주택법 개정안이 계류 중인데, 자유한국당은 반대 입장이고 더불어민주당은 미온적이라는 게 국회 관계자들의 공통된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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